“무령왕릉과 공산성 및 황새바위가 소재하는 관광지이자”
전통 5일장이 열리는 재래시장이 위치한 상권 밀집 지역입니다. 웅진동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외약리, 용당리, 박산리, 서혈동, 하산리, 소정리, 송산리, 하봉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용당주 읍에 편입되어, 용당정이라 하였습니다.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웅진동으로 고쳤습니다. 교동은 공주군 남부면 지역으로, 공주향교가 있으므로, 향교골 또는 교촌이라 하였습니다. 1914년 교촌 일부를 갈라서 금정이라 하여 공주면에 편입하였다가, 1947년 교동으로 고쳤습니다. 1986년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공주시 웅진동이 되었으며, 2008년 산성·웅진동 주민센터 통합 후 웅진동 주민센터로 개청되어 웅진동, 교동, 산성동, 금성동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웅진동의 지명유래
조선말에 공주군 동부면 지역으로 고마나루 또는 웅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에 따라 외약리, 용당리, 박산리, 서혈동, 한산리, 송산리, 하봉촌 일부를 병합하고 용당주읍이라하고 주외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 1일 주외면이 폐지되어 공주읍에 편입되어 용당정이 되었는데 1947년 동명의 변경으로 웅진동이 되었고 1986년 1월 1일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되어 공주시 웅진동이 되었습니다.
마을자랑거리
국립공주박물관
- 공주시 웅진동에 위치한 국립공주박물관은 공주를 비롯한 충청남도 북부 지역에서 출토된 중요 유물을 보관·전시하고, 유적 발굴 조사 등을 통한 학술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한편, 역사 문화 특강, 박물관 문화 강좌, 박물관 공예 교실 등 지역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평생 학습 기관으로서의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주요 업무로는 상설 전시, 특별전, 학술 문화 활동 및 평생 교육 활동 등을 수행하고 있는데, 2008년 5월 1일부터는 기획 전시를 제외하고는 무료로 관람케 하고 있습니다.
공산성
- 공산성은 백제 문주왕 원년(475년)에 서울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후 성왕 16년(538년) 부여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5대 64년간 웅진시대의 방어 거점이었던 고대성곽입니다.
공주시 금성동, 산성동, 옥룡동에 걸쳐 남으로는 시가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금강의 연안에 접해 있는 해발 110m의 야산에 위치하며, 동서의 길이가 약 800m, 남북의 길이는 약 400m의 타원형 형태를 띠고 있는 포곡형 산성이다. 성곽의 둘레 2,660m로 이중 석축부분은 1,930m, 토축부분은 730m에 달하고 동남부에서는 이중입니다.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약 2~7m이며 너비가 3m 정도인데 바깥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모두 7기가 전해지는데, 송산을 주산으로 뻗은 구릉 중턱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합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 ·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6호분은 일제시대에 조사되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습니다.
무령왕릉도 6호분과 같이 연꽃무늬 벽돌로 가로 쌓기와 세로쌓기를 반복하여 벽을 쌓았습니다. 벽에는 5개의 등자리가 있고, 무덤 주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황새바위천주교도순교지
-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1800년대 즉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했던 조선조 시대에 충청도의 각 지방에서 잡힌 사학죄인들이 숱한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았을 때 충청도의 감영이 있던 공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다시 배교를 강요당한 후 그래도 배반하지 않으면 감사의 명에 의해 사형대에 오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죄인들의 공개 처형지였던 이곳 황새바위는 황새가 서식했던 곳이기에 황새바위라고도 하고 이곳에 있던 바위가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이 황새 모양으로 생겼고, 목에 큰 칼을 쓴 죄인들이 이 언덕바위 앞으로 끌려 나와 죽어 갔으므로 황새바위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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