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백 년마다 승천한다 하는 요당이라는 못이 있는데 용이 승천할 때마다 뛰어난 인물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조 김종서 등의 위패를 모신 요당서원이 있어서 이의 이름을 빌려 요당면이라 칭하였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의랑면이라 하여 중산, 가락, 구산등 53개리를 관할하였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요당면의 월계, 내동, 두륙의 35개리와 반정면의 서산, 목동, 오류동의 3개리와 정안면의 동계, 원대의 2개리와 동부면의 하주막을 병합하여 의랑과 요당의 이름을 따서 의당면이라 하였습니다.
백제 때 웅천, 신라 때 웅주, 고려 때 공주목 관할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공주목 면리의 의랑면과 요당면의 지역입니다. 의랑면은 지형이 우리 속 같은 의랑골이 있어 의랑면으로 하였고 요당면은 정안천에서 흐르는 냇물이 동혈산의 끝자락인 이 지역에 와서 못을 이르는데 요당이라 하였습니다. 이 못에서 용이 백 년마다 승천하는 용이 승천할 때마다 뛰어난 인물이 배출되었다고 한다하여 요당면이라 하였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요당면과 의랑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개편하면서 의랑면과 요당면의 명칭을 따서 의당면이라 하고, 1980년 면청사를 월곡리에서 청룡리로 이전하였습니다.
동혈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해발 392m 높이의 천태산 중턱에 자리하고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호랑이가 나타나 스님앞에 입을 들어보여 자세히 보니 목에 가시가박혀 고통스러워 하므로 스님이 가시를 빼주자 은혜를 갚고자 대웅전뒤 쌀이나오는 바위를 알려주고 홀연이 사라지니 이때부터 매일 하루공양을 지을만큼의 쌀이 나왔지만 어느날 사람들이 많이와 절에 공양주 보살님이 쌀나오는 구멍을 크게했는데 쌀은 나오지 않고 핏물이 흘러 내렸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대웅전뒤로 쌀바위가 전하고 있으며 동혈사 전각으로는 대웅전.나한전.요사채와 고려시대조성된 3층석탑이 전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