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금강유역은 시대별로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에 이르는 선사시대와 고대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역사시대의 문화권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선사문화는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일정한 문화권을 설정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역적 특징을 보입니다. 금강은 공주지역에 정착한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삶의 보고(寶庫)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금강은 이때의 사람들에게 주요한 영양 공급원인 물고기와 조개를 원하는 만큼 풍요롭게 내주었으며, 생존과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물을 풍부히 공급하는 생명의 젖줄 역할을 했습니다.
또 강은 흐르면서 범람을 거듭한 끝에 농경생활이 용이한 옥토를 만들었으며 강 주변의 낮은 구릉사이의 분지로 사람들을 안내하여 공주지역 신석기시대 사람들로 하여금 농경을 통한 정착생활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는 공주시 석장리의 구석기 유적과 공주시 정안면 장원리, 청양군 정산면 학암리 신석기시대 유적의 존재로서 그 반증이라 할 것이며, 이들 유적은 공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금강 하류역 일대에서 인류의 거주가 이루어진 시기를 구석기시대 까지 올려 놓은 반면에, 이후 전개되는 역사 속에서도 꾸준히 사람의 삶이 이루어져 왔음을 확인 할 수 있는 근거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주에 존재하는 각 시대별 다양한 문화의 근간은 구석기 사람이 돌을 사용함으로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석기시대는 구석기와 중석기, 신석기시대로 나누는데, 돌을 가공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시대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 세 시기에 있어서 돌은 석기시대 사람들에게 신체적 열등성을 보강하는 재료(또는 도구 및 무기)로 사용되었으며 직립보행을 하게 됨으로써 자유로와진 두 팔을 이용하여 돌을 가공·사용함으로서 인류의 문화가 탄생하게 됩니다.